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중경삼림] 어긋난 마음들이 스쳐 지나간 도시의 짧은 연애시

by 0gam 2025. 3. 25.

중경삼림_포스터
중경삼림 - 이미지출처 : 나무위키

 

영화 정보 & 추천 이유 – 왜 이 영화를 봐야 할까?

  • 제목: 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 1994)
  • 장르: 로맨스, 드라마
  • 감독: 왕가위
  • 출연: 양조위, 금성무, 임청하, 왕페이
  • 수상: 홍콩영화평론가협회 최우수 영화상, 최우수 감독상 등

추천 이유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누구나 한 번쯤 지나쳤을 감정의 잔상들을 모아 도시라는 배경 위에 흩뿌려 놓은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선형적인 서사보다는 감정과 공간, 시간의 잔상을 따라 흐르며 인물들의 감정과 그 여백을 세심하게 포착합니다.
왕가위 감독 특유의 시적인 영상미와, 배경 속에 흐르는 음악들, 그리고 양조위와 금성무가 연기하는 사랑의 불안정함은 시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남깁니다.

줄거리 요약 – 이별의 시간에 스며든 우연한 연결들

  • 경찰 223번 / 하지무 (금성무) – 실연당한 청년 경찰. 전 여친과의 이별을 감자통조림의 유통기한으로 기억하려는 순수하고도 유머러스한 인물입니다.
  • 금발 가발의 여인 (임청하) – 마약밀매에 얽힌 비밀스러운 여성. 외면은 강하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고단하고 쓸쓸한 인물입니다.
  • 경찰 663번 (양조위) – 또 다른 실연의 주인공. 여자친구에게 버림받았지만, 여전히 그 흔적을 집안 곳곳에서 떠나보내지 못하는 남자입니다.
  • 페이 (왕페이) – 경찰 663번의 집을 몰래 정리하며 조금씩 그를 관찰하는 여자. 톡톡 튀는 성격과 함께, 묘하게 외로운 도시의 낙천가입니다.

홍콩이라는 도시의 밤, 복잡하고 다층적인 빌딩과 좁은 골목길 사이에서 사람들은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누군가에게 스쳐 지나갑니다.
하지무는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후 매일 만기일이 다른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으며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의 앞에 등장한 금발의 비밀스러운 여인, 마약밀매에 실패하고 도망치는 그녀는 하지무에게 작은 연민을 느낍니다.
두 사람은 이름조차 모른 채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다시 흩어집니다.
하지무는 그녀의 흔적을, 그녀는 하지무의 따뜻한 배려를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둘은 끝내 완전히 마주하지 못합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경찰 663번이 중심입니다.
여자친구와 이별한 그는 여전히 그가 남긴 비누, 수건, 심지어는 그가 떠난 후 공기조차 떠나보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페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그의 집에 몰래 들어가 냉장고를 정리하고, 커튼을 바꾸고, 음악을 틉니다.
마치 그의 일상에 조용히 스며드는 듯한 그녀의 행동은, 관찰인 동시에 사랑의 방식이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정확히 마주하지 않지만, 그 조용한 흐름 속에서 감정은 조금씩 자라고 흔들립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떠나고 다시금 둘은 타이밍이라는 감정의 시차를 마주하게 됩니다.

 

중경삼림의 특별함 – 감정의 입자들을 포착하는 영상 시

서사보다는 감정, 장면보다는 분위기로 이야기를 전합니다.
왕가위 감독의 카메라는 종종 흔들리고, 불분명한 초점과 느릿한 슬로우모션으로 인물의 혼란과 부유함을 시각화합니다.
공간은 좁고 빛은 번지며 음악은 반복됩니다.
그 반복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은 농도를 더해갑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때론 아주 작고 이상한 형태로 다가오고 스쳐지나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감자통조림, 낡은 수건, 마요네즈, 항공권, 흐릿한 거울 속 얼굴.
그 어떤 것도 대놓고 사랑을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사랑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중경삼림은 결국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누군가를 놓치고, 얼마나 조용히 그를 사랑하며,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게 되는가에 대하여~~

 

중경삼림과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 추천 – 도시 속 감정을 시처럼 담아낸 작품들

  • 화양연화 (2000) – 왕가위 감독의 또 다른 걸작. 억제된 감정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침묵
  • 비포 선라이즈 (1995) – 낯선 도시에서 마주한 우연과 대화, 그리고 잊히지 않을 하루
  • 이터널 선샤인 (2004) – 사랑의 기억을 지운다는 것에 대한 깊은 통찰
  • 헤어질 결심 (2022) – 시선과 거리, 그리고 감정의 무게를 탐구한 멜로 스릴러

사랑과 이별, 기억과 관찰이라는 테마를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풀어내는 영화들입니다.
중경삼림의 여운을 좋아했다면 이 작품들도 감상해보세요.

 

개인적인 감상평 – 말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하여

감정이란 이름의 기류들이 도시의 먼지처럼 흩날리고, 우리가 마주친 사람들 중 누구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오래도록 남습니다.
그들이 내 일상의 일부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는 그런 종류의 감정입니다.

이 영화는 사랑을 말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가장 깊이 말합니다.
“그 사람을 좋아한단 말도, 안녕이란 말도 못 하고 보내는 것” 그게 어쩌면 우리가 자주 겪는 사랑의 방식입니다.
누군가는 스쳐 가고 누군가는 흘러들고 우리는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또 조금씩 닳아갑니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나는 오래도록 그 음악을 떠올렸습니다.
칼튼의 ‘California Dreamin’이 흐를 때마다 마음 한켠이 기이하게 간지럽고 쓸쓸했습니다.
그 감정이 마음속에서 서서히 퍼지며, 오늘도 나는 다시 한번 어떤 사람을 조용히 떠올립니다.

 

"내 슬픔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일까."